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키 마사야 (문단 편집) == 사망 == [[1983년]] [[6월 28일]] 유작인 카마타 행진곡을 녹화한 직후에 몇 통의 유서를 남기고 도쿄 [[신주쿠]] '''게이오 플라자'''[* 1971년부터 74년까지 일본에서 가장 높았던 건물이었다.]의 47층 옥상에서 [[투신자살]]하였다. 그가 추락한 곳은 128미터 아래의 7층 [[수영장]]이었다. 유서의 내용 중 '''"아버지, [[열반]]에서 기다릴게요(おやじ、涅槃でまってる)"'''라는 말은 당시에도 일본 사회를 뒤흔들었고, 오늘날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참고로 유서에서 지칭한 아버지는 친부가 아닌[* 친부는 1975년에 사망했다] 소속사인 닛카츠 사의 사장인 '히카게 타다오'를 지칭한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문서 상단의 오키 마사야의 본명 "히카게 죠지"를 보면 알겠지만, 1975년에 오키 마사야의 친부가 사망하자 히카게 타다오는 오키 마사야를 정식으로 입양, 히카게 성씨를 물려주었다. 자살 당시의 상황을 간략하게 전하자면 자살 당시 객실에 유서를 남긴 후 옥상에서 경비원이 한눈을 판 사이 옥상 펜스를 넘어갔다고 한다. 경비원이 눈치를 채고 "기다려!"라고 했지만 너무 늦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한 가지 유명한 사실이 있는데, 추락한 그의 시신 중 다른 부위는 훼손되었어도 유독 그의 얼굴만은 기적적으로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는 것. 자살 당시 그에게 별다른 제재가 가해지지 않았던 점은 당시 일본에서도 많이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일본의 고층건물의 옥상은 문을 잠가놓게 되었다고. 그런데 그를 발굴해서 키워 주었던 양부이자 사장인 히카게 타다오는 게이 의혹이 있고, 미남 연예인들을 발굴하여 키워 주면서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있다. 오키 마사야 또한 그에게 [[사육]]당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실제로 그가 가출했을 때 일했던 바는 사실 남성 손님들을 주로 상대하는 곳이었다고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